[기획 인터뷰] 이슬기 - '연결되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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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우리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2007년에 처음 커피를 시작해 현재 16년차 커피인(人) 이슬기입니다. 지금은 오픈한지 3년 된 ‘카페 다르크’의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바리스타나 카페사장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커피인’이라고 한 이유는, 커피업계에 있는 많은 직군—예를 들면 로스터, 바이어, 큐그레이더, 메뉴개발 팀장 등—을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그냥 카페사장이라고 하기도 좀 그래요. 커피 몰라도 카페할 수 있으니까요.


Q. 이 일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A. 고등학교 졸업하고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한의대를 준비 중이었는데, 문과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경희대를 가려면 재수를 해서 이과시험을 쳐야했어요.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고 재수를 하려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는데,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아침에 무료로 커피강의를 한다는 얘기에 잠 깨려고 신청했다가 입사제안을 받아 커피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하며 대학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이게 하다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미련 없이 커피를 선택했습니다. 재밌는 게 최고니까요!


Q. 일하시면서 생긴 직업병 같은 게 있을까요?

A. 어떤 공간에 가든 견적을 따져보게 됩니다. 컨셉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부자재는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의 것을 썼는지, 수익이 나는지 마는지… 직원의 인상이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메뉴의 퀄리티를 가늠하기도 하고요. 99% 예상적중입니다. 음식을 먹으러 가서도 맛이 어떻고 서비스가 어떤지 생각하기도 하고… 일상이 전부 시장조사 같아져요. 하하. 몸 아픈 걸로 얘기하자면 오만 관절병과 위장병 등이 있습니다.




Q. 사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커피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거요. 어떤 건 공부를 조금 하다보면 금방 시들해지잖아요? 저는 재밌으면 몰입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는 빠르게 도착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순간이 오면 재미가 없어져요. 그런데 커피는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겠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16년을 공부했습니다. 남들보다 커피에 대해 많이 알겠죠? 그런데도 여전히 공부할 게 많아요. 말하다보니 조금 징그러운 대답이었네요.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제가 커피를 처음 배울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커피는 정답이 없다.’ 근데 저는 그 말을 싫어했어요. 저는 이과성향이 강한 편이어서 답이 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매일 잠도 안 자고 몇 년을 공부했어요. 저만의 결론은 이겁니다. ‘커피도 답이 있다. 그런데 변수에 따라 답이 아주 많아진다.’

커피 공부를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이렇게 답해드리고 싶네요. 커피 맛을 알게 되면 미각의 눈이 뜨인다고. 사람 사는데에 중요한 의식주 중, ‘식’생활이 아주 풍요로워질거라 장담합니다.


Q.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A. 카페는 몸, 머리, 마음을 다 쓰는 일 입니다. 어떤 일은 몸을 쓰는 대신 머리는 편하고, 어떤 일은 머리를 쓰는 대신 몸은 편하고 그렇잖아요. 맛있는 음료 한 잔을 만들려면 커피도 알아야하고 재료들의 물성도 이해해야 합니다. 머리가 아프죠. 메뉴는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만들기 시작하고 어떤 음식보다 만들어서 제공하는 속도가 음식 맛에 영향을 많이 줍니다. 쉽게 말하면 빨리 만들어서 빨리 드려야 맛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결국 몸을 혹사시키게 되는거죠. 마음을 다 쓴다는 건 아시다시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마음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예요. 좋은 마음으로 임해도 다쳐요.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매일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그렇다보니 몸, 머리, 마음 어느 하나 쉬지 못 하고 삼위일체로 고통받는 게 이 일의 가장 힘든 점이라 하겠습니다.





Q. 그럼에도 보람차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너무 뻔한 대답 같지만, 손님이 맛있게 드실 때가 가장 보람찹니다. 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여 맛있어 하시면 정말 좋아요. 코드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희열 같은 게 느껴지는 겁니다. 원두 숙성 날짜와 추출 등이 딱 맞아 떨어져서 "이야, 오늘 커피 정말 맛있다" 하는 날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손님께 기쁜 마음으로 서브를 했는데, 여기 커피 별로라고 하시면 정말 기운이 빠집니다. 하지만 커피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같이 맛있다고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기쁜 것입니다.





Q. 은평에서 카페를 하시면서 느끼신 은평구만의 매력을 소개해주신다면?!

A: 카페를 열고나서 알게 된 건데, 은평구에는 예술인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수, 작곡가, 영화감독, 디자이너, 작가 등등. 그래서 본의아니게 제가 다르크의 주요고객을 프리랜서로 잡은 게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다르크에서 독립영화도 찍고, 독서모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인이 모여 사는 동네라니, 너무 멋있지 않나요? 다르크는 예술인 마을 은평에서 문화살롱의 구심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전, 커피가 처음 음용되기 시작할 때, 커피하우스가 지성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것처럼요.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려요.

A: 최근에는 친구들과 ‘혼자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누구에게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함께하는 즐거움과 함께하면서 나로서 존재하는 방법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다음 스텝으로 ‘연결되지 않을 용기’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느라 정작 나의 안위를 돌아볼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의지하게 되는 어떤 것, 그게 사람이 되었든, 핸드폰이 되었든, 무언가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용기는 나의 정신적 자유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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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학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