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황준선 - '낯선 곳을 향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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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우리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까지 『40일간의 남미일주』라는 여행기를 연재하고, 지금은 은평구에서 청년지원 일을 하면서 평론을 쓰고 있는 황준선이라고 합니다.


Q. 여행작가 일은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A: 어릴 때부터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즐거웠죠. 당연히 사진도 많이 찍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여행지에서의 감정, 지식, 추억, 그런 것들이요. 물론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을 순 있겠지만 때로는 그렇게 이미지로만 남은 순간들로 인해 잊혀지는 시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게 된 뉴욕에서 사진 없이 여행을 다니게 됐어요. 뭐, 계획한 건 아니었고, 그냥 여행 초반에 핸드폰을 잃어버렸거든요. 그때 제가 여행의 경험으로 남길 수 있는 거라곤 가지고 있던 노트와 펜 뿐이었죠. 그렇게 매일매일 사진 대신 글로 인상 깊은 순간들을 글로 남기게 됐죠.

신기한 건 그때부터 여행이 오히려 풍족해지기 시작한 거 에요. 여행에서의 감정들도 더욱 섬세해지고, 글로 남겨야하니까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그곳의 정보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서 듣기 시작했죠.


Q.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A: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늘 답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여행지마다의 매력이 다르니까요. 뉴욕 맨하탄처럼 화려함에 매료되는 곳도 있고,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처럼 장엄한 자연경관에 압도되는 곳이 있기도 하고, 베트남 사파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여행지도 있죠. 어디가 더 좋다고 우위를 따질 수 없어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너무나 다르니까요. 그게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을 고른다면, 프랑스의 니스라고 말할 것 같아요. 프랑스 남부에 있는 해변도시인데, 도시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요. 햇살을 머금고 출렁이는 크리스탈 빛의 니스 해변은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폭우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거든요. 아직도 니스를 떠나는 날 밤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날씨와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상당히 화가 난 채로 숙소를 떠나게 됐는데, 쏟아지는 비를 뚫고 어딘가에서 버스킹 음악 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누군가가 폭우 속에서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을 연주하고 있었죠. 그 선율에 소름이 돋았어요. 화가 잔뜩 난 저에게 들려주는 작별인사 같기도 했고요.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그 노래를 들으며 니스 해변을 다시금 거닐고 싶습니다.





Q. 여행을 다니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A. 인종차별이죠. 특히 선의로 위장한 인종차별. 예를 들면 그런 거 에요. 길을 걷는 사람에게 ‘니하오’라고 한다든지,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부른다든지 하는 것 말이에요. 특히 혼자 다니면 특히나 더 많이 당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인종차별에 대해 무심하거나, 심지어는 가담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중국인에 대한 차별이지 우리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 는 식으로 말이죠.

안타까운 건, 보이는 건 국적이 아니라 인종이거든요. 이젠 언론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동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적 테러. 북미든, 남미든, 유럽이든. 어느 곳을 가든 동양인에 대한 은근한 인종차별이 정말 많아요. 사실 신경 쓰지 않으면 별로 힘든 건 없겠지만,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껴요. 한류가 어쩌니저쩌니 해도 그게 한국인, 즉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아마 우리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면 점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 같아요.





Q. 그럼에도 보람차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요. 항상 그렇거든요. 여행의 순간들은 너무도 소중하지만, 정말 소중한 여행은 일상을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거든요. 여행지에서 어떤 에너지들을 받아온다고나 할까?

뉴욕에서 한 달 정도 지낼 때는 정말 돌아오기 싫었어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내려 베이글과 커피 한잔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점심엔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가벼운 조깅을 뛰다가, 저녁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맨하탄의 야경을 안주삼아 위스키 한잔을 마셔요. 뉴욕의 화려함, 열정, 여유. 그 모든 것이 저에겐 동기부여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예전과는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 집 근처 한강 공원에서 조깅을 뛰었거든요. 숨이 헐떡일 정도로요. 그래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허드슨 강을 보면서 뉴욕을 거닐던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그렇게 뉴욕에서 가졌던 마음을 그대로 은평구로 가져오니 일상도 여행만큼이나 즐거워지더라고요. 단순히 여행지에서만 즐기고 무기력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여행에서의 보람은 이런 데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려요

A.“여행은 오해를 이해로, 편견을 식견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었다.”

제 여행기 『40일간의 남미일주』의 마지막 문장이에요. 남미로 떠나기 전까지 남미는 저에겐 그저 위험한 곳에 불과했거든요. 하지만 직접 그곳을 가보고, 그곳의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그런 오해나 편견들이 해소된 것 같아요.

남미 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의 여행도 마찬가지였어요. 여행은 늘 낯섦과 마주하는 일이잖아요. 그곳이 해외인지 국내인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렇기에 여행은 늘 여행자에게 무언가 배움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진짜 위험한 건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일이고요.

여가가 익숙한 공간과 경험을 즐기는 일이라면, 여행은 낯섦과 새로움을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여행은 굳이 먼 곳으로 떠나거나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요. 저와 같은 청년들이 그런 여행을 일상 속에서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오해와 편견은 잠시 백팩에 넣어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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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학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