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라, 예술과 만나다] 5. 골목을 가면 역사가 보인다

[종로구 2022 우리동네가게 아트테리어 지원사업 참여점포 기획기사]



#옥쟁이


- 서순라의 골목길엔 오래전부터 전통공예를 하는 점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묵묵히, 우리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명인들 말이다. ‘옥쟁이’ 는 그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 오랫동안 옥공예만을 전문적으로 해온 옥공예 장인의 공방이다.

다만, 그 비좁은 서순라의 골목을 지나는 행인이 옥쟁이의 공예품을 보고 지나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서순라 돌담길에 비해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혹여나 그곳을 지나치더라도 공방의 성격이 강한 옥쟁이에서 그곳이 옥공예품을 판매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긴 여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 아트테리어 개선작업 이후 ]



때문에 옥쟁이의 아트테리어는 어떤 아트워크가 곁들여지는 것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공예품을 외부 인테리어에 드러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옥쟁이의 공예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트’ 이기 때문이다.    


옥쟁이의 공예품 중 역작을 선정하여 시각이미지(전문 촬영물)를 점포 밖으로 선보이는 일종의 작은 전시역할을 하는 시트지를 제작하였다.  전문 작품 촬영 시 개선된 윈도우시트의 전체적인 색감에 맞도록 연출하였고, 이를 단순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을 2-way 렌티큘러에 할애하여 작품이 2D이면서도 3D 효과가 나도록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아주 좁은 골목을 지나는 행인에게도 두 가지 작품이 번갈아 움직이며 보이게 만들어 시선을 잡아끌도록 만들었다. 



#화미용실


- 골목길은 지역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통로이기도하다. 서순라의 골목길이 있는 곳, 즉 봉익동은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종로 주민들이 모여 살던 도시한옥주거지였다. 서순라길과 돈화문로 사이에 골목길이 많은 이유 역시 이곳이 상가가 아닌 주거목적으로 구획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골목길에 위치한 점포들은 여전히 연립한옥의 외관을 갖추고 있다.

외관 이외에도 이 골목길에선 봉익동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흔적이 바로 ‘화 미용실’이다.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미용실을 보면 한편으론 의문이 들기도 한다. 봉익동은 주민들보다는 공방과 같은 작업장, 또는 상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은 지금의 공방들이 자리 잡기 이전인 80년대부터 봉익동 주민들의 터전이 되던 곳이다.

상호명이기도 한 ‘화 미용실’ 의 유래를 듣다보면 그 시절의 활기가 녹아있기도 하다. 원래 점주님이 생각한 이 곳의 상호는 ‘희 미용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개업을 하고보니 근처에 같은 이름의 미용실이 이미 있었던 모양이다. 중복된 상호로 고민을 하던 찰나, 손님 중 한 명이 이 사연을 듣고는 ‘희’ 라는 글자에서 점 하나만 찍어 ‘화’ 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을 점주님이 받아들여 지금의 화 미용실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의 역사를 함께 해온 공간이지만 40년이란 세월 속에서 봉익동의 주민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찾는 손님들을 밝게 빛나게 해주는 공간 역시 빛이 바래 낡고 어두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 아트테리어 개선작업 이후 ]




- 봉익동의 활기를 다시 점포에 불어넣을 수 있을까. 화미용실의 아트테리어는 이 고민에서 시작됐다. 상호의 의미를 미용실이라는 점포 정체성에 맞게 “꽃”(花- 꽃 화)를 사용하여 새롭게 브랜딩했다. 기존 노후화 된 시트지와 간판은 제거하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는 크림색의 시트지와 간판을 설치하여 어두운 골목에서도 밝은 느낌을 낼 수 있도록 외관을 디자인 했다.

간판엔 점포 전면 유리창에 적혀 있는 ’화미용실‘ 이라는 문구와 더불어 상호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꽃 화花자를 추가했고, 꽃 모양의 로고를 넣어 보다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H.파베르 공방

- 서순라의 골목을 걷다보면 이상하게 사람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 몇 마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아니, 피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미 서순라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이상한 고양이들은 마스코트나 다름없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이 고양이들이 길고양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서순라길 골목에 숨어있는 ‘H.파베르공방’의 집고양이, ‘모루’와 ‘양말’이다. 서순라길을 어슬렁거리는 모루와 양말 두 녀석의 뒤를 쫓다보면 자연스럽게 좁은 서순라 골목 사이에 위치한 H.파베르공방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설령 고양이를 따라 이곳에 왔다하더라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곳의 골목길은 주거목적의 연립한옥들이 있던 곳이다보니 H.파베르 공방 역시 전형적인 도시한옥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공방임을 나타낼 수 있는 간판이나 외형이 없다보니 이곳을 찾아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이다.

서순라길만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옥점포. 이 전통의 느낌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점포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이것은 H.파베르공방을 포함한 서순라길 아트테리어의 전체를 통과하는 고민이기도 했다. 


[ 아트테리어 개선작업 이후 ]



- 사실 점포 상호를 드러낼 수 있는 간판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H.파베르공방의 점주님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H.파베르공방의 아이덴티티를 한옥건물에 녹여낼 것인지였다. 우선은 참여예술가와 점주 간 소통을 통해 공방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로고를 일러스트로 제작했다.

여기에 금속 공방의 특성에 맞도록 금속 재질을 활용한 정사각형 간판을 만들어 간판만으로도 점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게다가 어두운 저녁에도 잘 보일 수 있도록 한옥에 잘 어울리는 세리프체 글씨체를 사용한 조명을 넣어 한옥과의 조화도 더욱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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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선 기자 다른기사보기